최영만과 '터(땅)'

• 부서지고 버려진 장소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애수나 향수가 아닌 변신이나 변형을 앞두고 축적되는 에너지이다.
  '터(땅)'는 사람과 땅이 만들어낸 공간에 관한 것이요, 개개인에게 독립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한 때 새것으로 반짝이던 사물들은 부서지고 낡아져 유적이 되며, 자연의 의지로 나열된 유적들은 추상이 된다. 우리 생활 깊숙이 연계에 익숙해진 장소와 물건들은 새로운 시작을 통해 낯설고 다르게 보인다. 때론 거대하게 확대 된 오브제들은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그들만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게 만든다.
• 인지하고 있지만 잡히지는 않는 시간의 흐름은 ‘터 프로젝트' 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터'의 한 작품 안에 적게는 수백 장 많게는 수천 장의 이미지들이 한 개의 사진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시작장면 좌표(1.1)에서 마지막 장면 좌표(x,y)까지 모든 개별 프레임들은 독립적인 시간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보는 완성 된 장면은 하나의 시점으로 고정 된 것 같이 보이겠지만 사실은 개별적이며 불연속적인 시작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터프로젝트'의 최근 작업은 사진이 찍히는 프레임 안에 공을 던져 순간적으로 사진을 찍는 액션을 넣은 것으로 '터'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개별성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은 각 프레임 위의 공간에 사건을 만드는 작업이다.
  사건은 공을 튀기는 작업으로 시작 하였다. '터'의 결과적인 이미지는 추상이지만 작업하는 과정은 수직으로 내려다보는(satelite view) 관찰자의 시선으로 매우 객관적이다. 그 객관적인 사실 안에 artist로서 사건을 추가하여 사건의 관찰자에서부터 시작해 사건을 일으키는 주체자가 된다. 이것은 땅을 주제로 한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사진가의 액션이 들어간 또 다른 시작이다. 작품에서 '공'은 하나의 공이 아니다. '공'은 각기 다른 시간이다.